손님(Guest)으로 입장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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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여성스런 분위기의 오뛰꾸뛰르, 레이스, 꽃등등,,,그리고 최근에 실버의 미래적인 화장품 케이스하면 생각나는 프랑스 디자이너는......바로 지방시 랍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 마볍과 같은 신비한 매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귀공자의 용모, 그의 키만큼이나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아름다운 색채와 미묘한 아름다움을 옷으로 그려내는 섬세한 사내, 뛰어난 크리에이터이면서 비지니스 맨으로서의 유연성도 더불어 지닌. 적당히 과묵하며 우수에 찬 표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간 사람이 바로 지방시이다.
지방시의 화려한 인생, 현대를 살아가는 우상으로서의 그와 걸어온 시간이 얼마나 많은 뜻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바로 사람들의 이상과 현실의 문제에 출발한다.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는 1927년 2월 2일 파리 근교의 뽀삐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계는 모계가족의 아버지는 가구제조회사의 중역이었으나 그가 재능을 두루 갖고 있었으며 그의 외주부인 때펭씨는 유명한 뽀뻬타 피스리 직조 회사의 지배인 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크리에이터들과 다름없이 어렸을 때의 지방시 또한 인형옷을 만드는 일에 몰두 하였으며 좀더 머서는 그의 어머니 옷차림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오 재능을 보여 주었고 사촌누이들의 옷을
만들어 주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파리 국립대학(Ecole des beaux-arts)에서 미술과 법률 공부를 하였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그가 17살 나던해인 1944년 2차대전 중에 그는 당시 파리의 유명한 꾸뛰르에 였던 장 빠뚜 (patou jean)하우스에 그의 숙모의 소개로 입사하게 되어 운명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었다. 바뚜 하우스에서 일하며 그는 비로서 오늘날 그의 우아하고 흐르는 듯한 선으로 표현되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수줍고 핸섬한 키다리로 기억되고 빠뚜 하우스에서의 지방시는 그 이후에도 그의 이미지와 작품세계를 변함없이 고지스럽도록 지켜나간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 후 그는 로베르 삐께 하우스를 거쳐 파리 쌩지까의 리더였던 리시엥르롱 밑에서 일을 하였으며 그 곳에서는 크리스찬 디올과 같이 일 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엘사스끼아파렐리 밑에서 *모델리스트겸 브띠끄 담당의 주임으로 일하게 되는 행운을 갖게 되었습니다. 젊고 헨섬한 지방시는 뛰어난 크리에이터였던 스끼애 빠렐리 밑에서 화산적인 색채 , 대담한 모티브와 선으로 이어지는 조형 감각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다른 크리에이터들이 초기에 고통을 겪거나 불운했던 것과는 달리 지방시는 귀공자다운 용모와 매력 만큼이나 좋은 행운의 연속으로 그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지방시가 그의 살롱을 개설한 것은 그의 나이 25살 되던 1952년으로 당시 제과업계의 거물이었던 앙리 뮈니에르의 도움으로 중심가에서 좀 떨어진 몽소공원 근터 빅토리아풍 건축 양식에 아파트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충분한 자금을 갖지 못했던 지방시는 당시의 사람들이 시선을 돌리지 못했던 이 값싼 아파트에서 다른 사람들의 빈축을 받으며 첫발을 하였는데 이런 점에서도 후에 나타나는 그의 고집스런 판단과 자신에 대한 신념의 일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 모델리스트(Modeliste) : 고객을 직접 대상으로 하지 않고 쿠뛰리에를 위해 오리지널 디자인을 고안하거나,
직접 재봉하거나 작품을 만드는 사람.

http://www.givench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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